fnctId=bbs,fnctNo=1545 게시물 검색 검색하기 제목 작성자 RSS 2.0 13건, 현재페이지: 1/2 게시글 리스트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10편 - “서울대 女의사, 가 청춘이라는 주제로 외연뿐 아니라 제 삶의 기저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열정과 도전, 사랑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한 점이 새로웠어요. 이 시리즈를 통해 마치 제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 말 그대로 청춘 의 문턱에서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이길여 총장이 전한 소회다. 그는 공적인 활동뿐 아니라 식습관, 외모 관리, 골프 스타일까지 소소한 일상이 처음 공개된 것이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고 답했다. 실제 건강과 미용 비법에 관한 기사가 나간 뒤에는 관련 업체에서 모델 제안을 받기도 했다. 주변이나 독자의 반응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고 했다. 여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는 지인들의 연락이 이어졌고, 대학과 병원은 물론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메시지를 받았다. 어떤 이는 기사를 본 뒤 삶이 궁금해져서 자서전 『길을 묻다』까지 완독했다면서 편지를 보내왔고, 누군가는 직접 만나 인사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대부분 제 건강을 응원하고, 우리 사회 어른으로서 계속 희망을 키워 달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한 일이고, 어깨가 무겁습니다. 앞으로 이분들의 성원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사명을 다해 나갈 생각입니다. 희망의 멘토 로서의 역할은 사실 지난 인터뷰에서도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특히 불안한 미래 앞에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이야기는 인터뷰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제였다. 청춘 이길여 의 마지막은 그래서 청춘에게 전하는 따듯한 한마디로 끝을 맺는다. #꿈의 크기를 미리 정하지 마라 저는 학생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어요. 꿈을 크게 가지라고, 안 돼도 좋으니 일단 크게 가지라고요. 그래서 창업대학도 만들었고요. 아무것도 안 하려는 게 문제지, 해서 실패하는 건 문제가 아니거든요. 실패도 해봐야 그릇이 커집니다. 가천대에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일, 8차선 대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인천 길병원을 지하로 뚫어 있는 일은 그 무모한 꿈에서 나온 결과였다. 교수진과 의료진이 모두 죽어도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는 한번 해보기라도 했냐 며 스스로 승인 절차를 알아봤다. 이길여 총장이 유년 시절을 보낸 전라북도의 생가. 사진 가천대 지금도 무한한 꿈을 말할 수 있는 건 그의 인생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총장의 유년 시절은 여자는 뭘 배우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골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 총장과 그의 언니뿐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도 모두가 말렸지만 어머니만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줬다. 형편이 뻔한데도 어머니는 뭐든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저도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기왕이면 서울대를 가야겠다 맘먹었죠. 당시 제 조건에선 정말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었는데, 그걸 정말 이룬 거예요. #미래의 불확실성은 어른 세대의 잘못 이길여 총장(앞줄 왼쪽부터 넷째)이 모교인 대야초등학교를 방문했던 모습. 사진 가천대 이런 긍정의 말이 힘을 얻지 못하는 시대라는 걸 이 총장도 이미 알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 같은 수저론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여기에 대해 정치를 꼬집었다. "출발부터가 다르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는 청춘들이 많은 건 정치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적어도 그에게 정치란 젊은 세대가 꿈에 부풀어 빠져들고 정신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대범한' 이야기도 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할 젊은 시절에 워라밸 욜로 를 내세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가 참 좋은데 그 장점을 이어가야죠. 젊은 세대가 무조건 8시간만 일하도록 만들거나, 실직을 수당으로 메워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길여 총장의 뉴욕 시절 모습. 사진 가천대 최근 교육계의 화두인 의대 쏠림 현상에도 한마디를 보탰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왜 의대에 가고 싶어 할까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에요. 의사처럼 죽을 때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직업이 많지 않다는 거죠. 우리 때는 열심히만 살면 다 잘 산단,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죠. 아무리 가난해도 희망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AI부터 우주 개발까지 세상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아쉬워했다.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일단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해요. 우리의 청춘들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저 역시 지금껏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시리즈 바로보기 No. 13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1547 등록일 2024.03.18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 이길여 집 마당에 의료사교육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소형 전기버스 무당이 . 오르막길을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도입했다. 남윤서 기자 지하철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광장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생이 왕이다. 식당에 종종 붙어있던 손님이 왕이다 가 떠오르는 문구다. 왜 이런 현수막을 걸어놨는지를 이길여(92) 가천대 총장에게 물었다. 이 총장은 학교는 왕으로 모실 테니 너희는 왕답게 리더가 되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며 조금 오버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학생이 어려서부터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해주고 싶다 고 답했다. 이 총장을 오래 만나온 사람들은 이것이 그만의 소통법이라고 말한다. 뇌리에 박힐 정도로 긍정적 반응을 계속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증손자뻘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린다. 지난해 가천대는 가천 매력 TOP10 후보를 선정하고 학생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압도적 1위는 이 총장이었다. 가천문화재단이 이길여 총장 자택 마당에 짓고 있는 가천의료사교육관. [사진 가천대] 이 총장에게 비결을 묻자 사랑을 주니까 란 답이 돌아왔다. 대학을 처음 인수했을 때부터였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그는 낡은 책걸상부터 바꿨다. 의자 수십 개를 늘어놓은 뒤 학생들이 직접 앉아보고 투표하게 했다. 이 총장은 스스로 왕이란 생각이 들려면 책상, 의자부터 좋아야 하지 않겠느냐. 비싸도 아끼지 말라고 했다 고 말했다. 캠퍼스 내에는 무당벌레 모양의 소형 전기버스 무당이 가 돌아다닌다. 이 역시 이 총장이 학생들이 오르막길 오르는 게 안쓰러워서 만든 것이다. 2012년에는 하와이에 글로벌센터도 만들었다. 당시 하와이를 방문한 이 총장은 해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 우리 학생들도 오게 해주고 싶다 생각했다. 곧바로 2주간 발품을 판 끝에 오래된 호텔 건물을 사고 1년 만에 리노베이션까지 마쳤다.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총장은 평소 생활은 검소한데 수십 수백억원이 드는 일은 무섭게 빨리 결정할 때가 있다. 학생에게 도움이 되나 는 것만 생각하니 결정이 쉬운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은 누구든 총장이 나를 제일 신임한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를 가장 믿어준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나서 일하게 되고 더 잘 보이고 싶어지는 것 이라고 했다. 최 부총장은 총장이 호감을 얻는 건 특유의 리액션 때문 이라며 좀 허황된 아이디어에도 너무 좋다 며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고,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주려고 한다 고 소개했다.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광장에 걸린 학생이 왕이다 현수막. 남윤서 기자 이 총장에게 이런 인간적 매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물었더니 먼저 애정을 줘야 한다 고 답했다. 학생이든, 직원이든 먼저 준다 가 그의 소통 비결이다. 남에게 먼저 준다는 것이 그의 젊음의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김우경 길병원장은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저렇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늘 환자와 학생을 우선에 두니 따르는 사람이 많아 행복하고, 호르몬 체계도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의사의 꿈을 꿨을 때부터 그의 삶은 봉사와 맞물려 있었다. 의사 얼굴도 보기 어려웠던 시절, 학교 갈 나이가 되기도 전에 죽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겠다 고 생각한 그였다. 미국 유학을 갔다가 전쟁 나간 또래 청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귀국했던 일이나,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보증금 없는 병원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한 환자들은 의료기록에 미리 X표를 해두고 모르는 척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에 백령길병원을 열고 적자 속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송진구 가천대 교수는 자꾸 돈이 안 되는 일만 벌이는 경영자인데도 왜 성공하는지 궁금했다 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비결은 남을 도와주려면 매 순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 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마지막까지 남에게 줄 예정이다. 인천 옥련동에는 고서와 의료사 자료 등이 보관된 가천박물관이 있다. 이 총장의 자택은 그 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자택 마당에는 가천의료사교육관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박물관은 물론 집까지 모두 기증할 계획이다. 전 물려줄 자식도 없잖아요. 사는 동안은 환자와 학생에게, 떠날 땐 후세에 아낌없이 주고 가야죠. 시리즈 바로보기 No. 12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477 등록일 2024.03.13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9편 “X 표시한 환자는 먹튀 이길여 총장이 여의사들과 함께 한 무의도 의료 봉사 당시 모습. 사진 가천대 헬퍼스 하이(Helper s High) 라는 용어가 있다. 마라토너가 힘든 구간을 지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는 러너스 하이(Runner s High)에 빗댄 말인데, 나눔 봉사 기부를 할 때 극적 쾌감을 얻는다는 의미다.이타적 행동이 정신적 만족만이 아니라 실제 장수와도 연관이 높다는 과학적 연구는 이미 수차례 입증된 바 있다. 행복 호르몬 으로 알려진 엔도르핀과 친밀감을 높이는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하면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만성 통증이 줄어든다는 게 공통된 결과다. 청춘 이길여 의 한 축을 나눔과 봉사, 사회 공헌에서 찾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우경 길병원장도 여기에 공감한다. 내가 벌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저렇게 건강할 수 있을까요. 늘 환자와 학생을 우선순위로 두니 따르는 사람이 많아져 행복하고, 호르몬 체계가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슬러 보면 이 총장이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부터가 업의 사명감을 넘어 약자에 대한 봉사, 국가 발전 등과 맞물려 있다. 나는 의사 얼굴을 못 보고 초등학교에 갔어요. 의사가 뭔지도 모르고, 학교 갈 나이가 되기 전에 친구들이 죽기도 했죠.그때 사람이 죽으면 왜 죽지, 어떻게 하면 저 아이들이 안 죽지, 그런 고민을 어린 나이에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때는 누가 아프면 무당이 와서 음료수나 올리고 뭐 그런 거밖에 못 했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의사가 와서 천연두 예방주사를 놓아주고, 약도 주고 주사도 놔주더라고요. 그게 너무너무 신기한 거예요.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돼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었죠. 이 총장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준 이영춘 박사. 이 박사는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이 총장이 다니던 대야초등학교 등 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사진 가천대동년배에 대한 부채 의식 역시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큰 방향성이 됐다. 1968년 미국 유학을 갔다 체류를 포기하고 귀국한 이유이기도 했다. 6 25전쟁 때 또래의 청년들이, 또 서울대 의대 학우들이 학도병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아팠어요. 군산 도립병원에서 상이군인도 많이 봤고요. 제게는 다 마음의 빚이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료 활동과 봉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애국은 병원과 대학의 설립 이념이기도 했고요. 실제 의사 이길여의 행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보증금 없는 병원 의료 취약지역 병원 설립 이다. 1950년대는 의료보험 체계가 정착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병원에서는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환자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1958년 인천시 용동에 문 연 이길여 산부인과 는 돈이 없어 병을 키우거나 안타까운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보증금 없는 병원 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또 돈이 없어 밤에 사라지는 환자를 수소문하지 않고 그냥 두거나, 가난한 이들의 진료기록에 X를 미리 해둬 접수처에서 모른 척 내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들은 후에 답례품으로 가져온 쌀과 생선, 제철 먹거리가 병원 1층을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1982년 양평 길병원 개원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 가천대동네 병원이던 이길여산부인과가 1987년 인천 구월동에 중앙길병원 으로 확장한 이후, 사회 공헌 역시 규모가 커졌다. 의료 취약지 병원을 인수하거나 설립했다. 양평(1982), 철원(1988), 백령도(1995)에 문 연 병원은 매년 적자가 1억~ 4억원까지 났지만 지자체에 운영권을 넘길 때까지 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진료는 계속됐다.백령도 병원에서 시작된 효행상백령길병원은 2001년 운영을 중단했지만 또다른 기부의 불씨가 됐다. 이 총장은 서너 차례 백령도를 오가며서 효녀 심청의 고장에 심청 동상을 세웠다. 1999년 인천 옹진군이 심청각을 개관 하면서 동상 제막식이 열렸고, 이 총장은 때맞춰 심청 효행상 도 제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상을 만들기 일 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이 컸어요. 어머니가 지극한 효녀이자 효부였기도 했고, 어릴 적 마을 사람들에게 심청전 을 읽어주시던 기억이 생생했거든요. 이 상은 가천문화재단이 매년 시상하며 2021년까지 24회 수상자가 나왔다. 지금은 남학생까지 대상을 확대했고 22년에는 가천효행대상으로 명칭을 바꿨다. 2009년 MBC 교양프로그램 성공시대 를 통해 이 총장을 인터뷰한 송진구(경영학) 가천대 교수는 그를 가장 인상적인 리더 로 기억한다.MBC 교양 프로그램 '성공시대' 출연 장면. 경영자인데 돈이 안 되는 일을 자꾸 벌였잖아요. 투자하는 순간 바로 적자인 게 뻔한데도요. 수익 창출이 최우선인 보통의 경영과 다른데 왜 성공했을까, 정말 궁금했어요. 그는 이 총장과 여러 번 만나면서 서서히 답을 찾았다고 한다. 보통 성공하는 사람들은 야망을 쫓는 게 1순위인데 왜 총장님은 다르냐고 여쭤 봤어요.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누구를 진짜 도와줄 수 있으려면 매 순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더라 고요. 그러면서 송 교수는 성공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미래 기억 이 그에게도 통한다는 말을 보탰다. 미래 기억이란 과거가 아닌 미래의 긍정적인 모습을 머리에 그려 넣는 것. 일찌감치 성취감을 느끼면서 중간 과정이나 노력을 즐기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벌써 행복하잖아요. 그런 삶의 에너지가 이 총장에게는 늘 있으니 늘 건강할 수밖에 없죠. 남을 도와주다 보니 뭔가 일이 되더라 라는 말은 비단 병원의 사회 공헌에서만 나타난 일은 아니었다. 가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가천박물관 이 인천 유일의 국보 초조본 유가사지론(初雕本 瑜伽師地論) 권 53 을 보유하게 된 계기도 남을 돕다 벌어진 일이었다.가천박물관 소장 국보 초조본 유가사지론(初雕本 瑜伽師地論) 권 53 . 사진 가천대 1970년대 중반에 고서점을 운영하는 중년 남자가 찾아 왔어요. 집안 대대손손 내려오는 고서가 있는데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하길래 3000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죠. 그런데 고서를 일단 들이고 나니 전시회에 나가지 않는 책들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거기서 국보가 나온 거예요. 1993년 이 고서가 국보로 지정되면서 박물관 건립에 가속이 붙었고, 2년 뒤 가천박물관 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의료 관련 국가 지정 문화재, 이길여산부인과 시절부터 보관해 온 의료 기구 등 1만8000여 점을 보유한 국내 최대 의료사 박물관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간행물 창간호를 소장하며(5357권) 인천의 명소가 됐다.이 총장의 자택 역시 박물관과 마주해 있다. 현재 집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데, 마당과 연결된 공터에 인간문화재 최기영 대목장이 도편수를 맡아 전통 한옥 양식으로 가천의료사교육관 을 짓고 있다.가천문화재단이 인천 옥련동에 마련하고 있는 가천의료사교육관 현장. 최기영 대목장이 맡아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짓고 있다. 사진 가천대 6월에 완공되면 집은 물론이고 박물관도 가천문화재단에 모두 기증할 예정이에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물건이 우리 할머니가 결혼할 때 가져오신 물병이거든요. 어머니도 참 아끼셨고요. 저는 그것도 박물관에 다 두려고 해요. 전 물려줄 자식도 없잖아요. 사는 동안은 환자와 학생에게, 떠날 땐 후세에 아낌없이 주고 가야죠. 시리즈 바로보기 No. 11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848 등록일 2024.03.11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 “이어령과 통했다”…92세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이 11일 인천 연수구 가천박물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어령과 통했다 92세 이길여와 그의 뜻밖의 공통점 이길여 진짜 건강 비결은 호기심 2022년 말 총장님을 오랜만에 만났어요. 보통 그 연세이면 추억을 곱씹거나 건강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총장님 입에서는 AI, 챗GPT가 가장 많이 나왔어요.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이길여(92) 가천대 총장을 두고 젊다 고까지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력 주름 걸음걸이 같은 외연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일수록 새로움과 내일에 대한 호기심이 진짜 건강 비결 이라고 입을 모은다.이 총장의 집은 작은 뉴스룸이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늘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매일 아침 신문 10여 종을 헤드라인이라도 훑는 게 중요한 일과다. 주요 일간지의 경우 사설 읽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역시 뉴스다. 지상파 외에 종합편성 채널이 생기면서 뉴스 하나가 끝나면 채널을 돌려 다른 뉴스를 보는 시청 패턴이 굳어졌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이 총장(가운데)은 토요일 저녁마다 조카 부부와 '위켄드 콘퍼런스'를 연다. [사진 가천대]이 총장이 뉴스 마니아를 자처하는 건 다양한 분야의 이슈에서 메가 트렌드를 파악하고 업무에 적용하려는 목적에서다. 실제 아침 신문에 전기차 시대에 대학은 내연기관을 가르친다 는 기사가 나온 날, 그는 곧장 관련 학과 회의를 소집해 우리는 뭘 가르치는지 우리는 잘하고 있는지 진단해 보라고 지시했다. 좀 더 깊이 있는 주제일 땐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하기도 한다.미래를 보고 일을 벌인 대표적 사례가 가천대 통합이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하고 2000년 총장에 취임한 그는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전문대)을 통합했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합쳤다. 2012년엔 가천의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가천대로 일원화했다.왜 그랬을까. 학령인구라는 말도 없던 20년 전부터 학생 수 감소를 생각했어요. 죽기 전에 10대 사학을 만들겠다 는 목표를 이루려면 학생 수가 많은 대학, 그리고 의대를 통해 발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방법은 통합뿐이었다.이 총장(오른쪽)은 고 이어령 교수(왼쪽) 생전에 서로 교유하며 생명철학 등을 공유했다. [사진 가천대]가천대는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다음은 공대 확대였다. 인공지능(AI), 스마트시티, 차세대반도체, 배터리 등 공학 계열 학과를 신설했다. 이 대학 공학 계열 입학 정원은 2060명(2024 기준)으로 국내 최다다. 2022년엔 창업을 지원하는 코코네스쿨 을 만들어 재학생이 창업하면 학점을 인정하고 졸업시켜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199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경원대는 111개 대학 중 92위로 최하위권이었지만, 2023년 가천대는 27위에 올랐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대학 위상의 큰 차이를 엿볼 수 있다.이 총장을 오래 지켜본 대학 및 병원 관계자들은 신기할 만큼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 고 말한다. 가령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추진되자 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I 붐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2020년 국내 최초 AI학과를 만들었고 AI인문대학도 출범을 앞뒀다. 90대 나이에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꾸준한 학습이 비결이다.소통과 토론은 이 총장의 또 다른 지식 채널이다. 토요일마다 조카 부부인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과 최미리 가천대 수석부총장이 이 총장 집을 찾는다. 오후 5시쯤 저녁을 마치고 차 한잔을 나누고 나면 이른바 위켄드 콘퍼런스 가 이어진다. 세 사람이 병원과 학교에 대해 한 주간 중요했던 일, 다음 주 업무 등에 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여기에 이 총장의 미래를 향한 식견이 더해진다.이런 콘퍼런스가 팬데믹 전까지는 집 밖에서도 있었다. 고 이어령 교수, 김병종(가천대 석좌교수) 화백과의 만남이었다. 김 화백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생명 으로 통했다 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생전 생명 자본주의 를 주창하며,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자연이 경제 활동의 자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꾸준히 펴 온 인물이다. 김 화백도 생명 이라는 주제로 연작을 선보였다. 이 총장님도 생명을 받아내는 의사이자 그 생명이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자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죠. 셋이 만나면 생명 철학과 비전을 많이 공유했습니다. 이 교수가 2019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대화는 더 무르익었다. 생명의 탄생만이 아니라 소멸까지 폭넓게 다뤄졌다. 김 화백은 호기심 많은 두 어른이다 보니 미래는 어떨 것인가 라는 화두만으로 두세 시간이 흘렀다 고 기억했다. 달변가인 이 교수님이 90% 말씀하셨지만, 총장님도 짧게 의견을 내고 아이디어를 주시곤 했죠. 문학 사학 철학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지식향연, 그 자체였습니다. 시리즈 바로보기 No. 10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415 등록일 2024.03.07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 “몸은 50대” 비밀 고백했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이 11일 인천 연수구 가천박물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몸은 50대 비밀 고백했다 92세 이길여 최강 동안 비결 신체나이 60대, 92세의 자기관리법 내 이름이 뭐라고! 지난해 5월 10일, 가천대 축제 무대에 오른 이길여 총장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가수 싸이에 앞서 등장해 말춤을 추는 영상은 유튜브에서 347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91세라는 걸 믿을 수 없다 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 총장은 웰에이징(well-aging)의 아이콘이다. 중앙일보 구독 서비스 더 중앙 플러스 는 청춘 이길여 에서 생활 습관부터 운동 소통법 리더십까지, 그가 90대에도 푸르른 비결을 소개한다. 비행기 안에서도 눈을 안 붙인다 피곤해서 몸살이 나는 걸 이해 못 한다 는 등 이 총장의 체력에 관한 증언 들은 많다. 그는 코로나도 피했다. 지난해 한글날 연휴에는 사흘 내리 골프를 치는 괴력 을 자랑했다. 그의 신체 나이는 얼마일까.이길여 총장은 사흘 내내 골프를 칠 정도로 건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사진 가천대]이 총장 건강검진과 진료를 받는 길병원의 김우경 원장은 60대 중반 이라고 가늠했다. 골밀도가 50대 못지않다 는 이야기는 병원 내 비밀 아닌 비밀이고, 최근엔 장수인자로 알려진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추가됐다. 이 총장은 환갑 넘은 후배보다 더 높은 83 이라고 말했다. HDL 20~24세 여성의 평균 수치는 69mg/dL이다가 70세에 59mg/dL까지 내려간다.타고난 체력을 뒷받치는 건 식습관이다. 158㎝에 59㎏의 아담한 체격과 달리 그는 대식가 다. 아침 식탁엔 녹즙 한 컵, 계란 요리, 요구르트, 콩물이나 단백질 파우더를 넣은 우유, 견과류, 고구마나 감자가 올라온다. 여기에 삶은 뒤 다시 올리브유를 뿌려 익힌 토마토와 생 파프리카와 양배추 등을 즐긴다. 후식은 늘 사과. 간과 신장에 무리가 가면 과유불급 이라는 생각에 영양제는 비타민 콜라겐 유산균 바이오틴으로 제한한다.외식할 땐 늘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최근 즐기는 특식 은 햄버거. 미국 유학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소울 푸드다. 김경민 비서는 설마 다 드실까 싶어서 (버거킹 와퍼) 주니어로 사 갔다가 혼이 난 적 있다 면서 레귤러 사이즈에 프렌치프라이, 콜라까지 세트로 주문한다 고 귀띔했다.지난해 5월 가천대 축제 무대에서 말춤을 추고 있는 이 총장. [사진 가천대 유튜브 캡처]이 총장은 늘 오후 11~12시 취침, 오전 7~8시 기상을 지킨다.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 한 잔과 요가로 몸을 푼 뒤 본격적으로 걷는다. 집 안에 기구를 들인 운동방을 갖췄고 최근엔 수중 워킹을 위해 온수 풀을 만들었다. 주변에선 1분 1초를 가만히 안 계신다 는 말이 나온다. 차에서도 손목 발목을 돌리기나 허벅지 운동을 하고 TV 볼 땐 누워 다리를 들었다 놨다 한다. 우주 최강 동안 이라는 수식어는 숱 많은 머리와 잡티가 도드라지지 않은 피부,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는 목과 손의 깊지 않은 주름 때문에 붙었다. 일본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온다 는 소문이 날 정도지만 상당 부분은 집안 내력이다. 30~40대 때만 해도 곱슬에 머리카락이 워낙 굵어서, 파마하려면 숱을 쳐내야 했다. 피부 노화가 느린 건 어머니를 닮아서란다. 최근엔 학생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젊게 보이려는 노력이 불가피해졌다. 10여 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레이저 시술을 받는데, 동안의 아이콘이 된 건 뉴스위크 표지 모델이 됐던 2012년 즈음부터다.일본 패션디자이너 이사하라 사치코는 『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일,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족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썼다. 이 총장의 멋 내기가 그대로다.신뢰감 주는 정돈된 스타일을 고수한다. 흐트러짐 없는 짧은 머리는 30년 인연의 미용사, 허리가 들어가는 각진 재킷은 수십 년 단골 양장점 몫이다. 스카프나 브로치, 목걸이 반지 귀고리는 생략한다. 멋부림 포인트는 매니큐어. 20년 넘게 핑크빛이 도는 갈색을 바르고, 남이 보지 않는 발톱은 새빨갛게 물들인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서다.그는 건강하니까 열정이 넘치는 게 아니라, 열정이 있으니까 건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 말한다. 아직도 학생이나 환자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죠. 내 건강의 기준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느냐니까요. 시리즈 바로보기 No. 9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417 등록일 2024.03.07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8편 증손자뻘에 "네가 지하철 가천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쇼핑몰에서 본 듯한 지하 공간이 나온다. 천장에는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고, 유럽 광장처럼 꾸민 벽면과 기둥 사이로 분수가 솟아오른다. 그 한가운데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빨간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학생이 왕이다. 예전 식당 벽에 종종 붙어 있던 손님이 왕이다 가 떠오르는 문구다.지하철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 광장에는 '학생이 왕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왜 이런 현수막을 학교 정문이나 다름없는 곳에 붙여놨을까. 이길여 총장에게 물었다. 우리 학교는 너희를 왕으로 모실 테니, 너희는 왕답게 리더가 되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어요. 조금 오버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었죠. 이 총장을 오래 만나온 사람들은 이런 방법이 그만의 소통법이라고 말한다. 뇌리에 박힐 정도로 긍정적인 얘기를 계속해 준다는 것이다.92세 현역 최고령 대학 총장인 그는 증손자뻘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여전한 인기를 누린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이 같이 사진 찍자며 달려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다. 젊은이들도 느끼는 이길여의 인간적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학교 인수하자마자 교실 책상부터 바꾼 이유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이 총장이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바꾼 것은 책걸상이었다. 교실을 둘러보다 책상을 만졌는데, 가시가 손에 박힐 정도로 낡은 상태였다. 그는 곧바로 여러 공장에서 만든 의자 수십 개를 구해 총장실 앞에 늘어놓도록 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직접 앉아보고 좋은 의자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도록 했다. 학생들 스스로 원하는 의자를 고르도록 한 것이다. 이 총장은 학생이 스스로 왕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려면 의자, 책상부터 좋아야 하지 않겠느냐. 가격 차이가 나더라도 학생한테는 아끼지 말라고 했다 고 말했다.가천대 캠퍼스 내를 돌아다니는 소형 전기 버스 '무당이'. 이 총장은 "학생들이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게 안쓰러워 보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 미국 출장길에서 본 무당벌레 모양 엘리베이터가 기억에 남아 무당벌레 버스를 만들었다. 사진 가천대 학생이 우선 이라는 원칙은 이 총장이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하와이 글로벌센터를 세운 일이다. 하와이에 방문한 이 총장은 해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는 우리 학생들도 오게 해주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곧바로 한국에 연락해 캠퍼스를 세울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고, 직접 2주간 발품을 팔아 하와이 부동산을 보러 다녔다. 그 자리에서 해변의 오래된 호텔 건물을 계약하고 1년 만에 리노베이션까지 마쳤다. 이후 글로벌센터는 가천대 학생들이 한 달씩 어학연수를 하는 곳으로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다.최미리 수석부총장은 총장님은 평소 생활은 굉장히 검소한데, 수십 수백억이 드는 일은 무섭게 빨리 결정할 때가 있다. 우리는 교수나 의사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고민할 것이 많은데, 이분은 학생 환자에게 도움 되나 이것만 생각하니까 결정이 쉬운 것 이라고 말했다.학생들이 뽑은 가천 매력 1위는 이길여 이렇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 이 총장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지난해 가천대는 대학의 자랑거리를 뽑는다는 취지로 가천 매력 TOP 10 후보를 선정하고, 축제 기간에 학생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이길여 총장 이 압도적인 1위였다. 2022년엔 총장을 캐릭터화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무료 배포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은 총장 이름조차 모르는 게 당연하다. 총장이 대학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건 가천대가 유일할 것 이라고 말했다.가천대 유튜브 채널에서 만든 10대 매력 후보 소개 영상. TV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을 패러디한 영상이다. 축제 기간 진행한 투표에서 이 총장은 압도적인 '가천 매력' 1위로 뽑혔다.이 총장에게 그 인기의 비결을 물었더니 사랑을 주니까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대학을 처음 인수했을 당시 일화를 얘기했다. 예전에 한 교수가 학생들한테 너희들이 공부를 못해서 서울대 못 가고 여기 왔다 는 실언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학생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조항을 학교 정관에 넣으려고도 했어요. 교수라면 우리 학교가 최고고, 너희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해야죠. 나는 자식이 없어봐서 모르지만, 우리 학생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아요. 나를 가장 믿어준다 착각하게 하는 리더이 총장의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취재진이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는 그의 매력 이었다. 함께 일하는 의사나 교수들 대부분이 이 총장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은 이 총장이 주변 사람의 호감을 얻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총장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누구든 총장이 나를 제일 신임한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요. 총장이 나를 가장 믿는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나서 일하게 되고 더 잘 보이고 싶어지죠. 보상이나 승진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매료돼서 그렇게 돼요. 최미리 부총장은 그런 호감을 얻는 소통법이 이 총장의 리액션 에서 나온다고 본다. 좀 허황된 아이디어를 얘기해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왜 그걸 지금 얘기하느냐 면서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줘요.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어도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주려고 하고요. 그런 반응을 보면 더 성과를 내려고 경쟁적으로 일 하게 되죠. 이 총장에게 인간적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물었다. 그는 먼저 애정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학생들에게도, 직원들에게도 그의 소통 방법은 먼저 준다 였다. 내가 (애정을) 먼저 주니까 그래요. 리더는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려고 하는 따뜻한 인간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면 누구든 느낄 수 있거든요. 2008년 KAIST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당시 학위를 받은 두 사람이 이길여 총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사진 가천대 하지만 조직을 이끌면서 매번 좋은 리액션만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윤원중 부총장에게 이 총장이 어떤 식으로 질책하거나 야단치는지 물었더니 나도 총장님에게 배운 방법인데, 제3자를 활용한 '쿠션'법이 있다 고 말했다. 면전에 화를 내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직접 얘기하면 아무래도 감정이 드러나게 되죠. 그래서 다른 사람을 통해 대신 전달하도록 하시죠. 쿠션 을 주는 방법입니다. 서로 잘 아는 사람을 통해 총장님이 하려는 말을 대신 전달받아 보면, 직접 야단을 듣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더라고요. 정치권에서는 한때 세대를 초월해 두루 인기를 얻은 이 총장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총장은 공직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다. "책임 있는 사람은 정치도 해야 하지만, 한창 정치를 할 나이에는 눈앞에 죽어가는 환자를 보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 이후엔 학교를 맡게 되면서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해졌죠. 병원과 학교를 떠날 수 없어서 정치를 못한 것 같아요. " 시리즈 바로보기 No. 8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803 등록일 2024.03.04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7편 92위 대학 200억에 산 이길여 라는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언제부터일까. 전국 단위 일간지 기준으로 보면 1998년부터 그의 이름이 나오는 기사 수가 갑자기 많아진다. 이전까지는 길병원 행사를 소개하는 단신 기사에 이름이 한두 번 나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1998년 가천의대를 설립하고, 경원대까지 인수하면서 언론은 이길여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는 이 총장에 대해 교육계 진출 4년 만에 거물 이 됐다고 표현했다. 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 지면 의사였던 그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나이는 66세. 당시 경원대는 이사장의 200억원대 등록금 횡령 등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 총장은 이 돈을 대신 보전해 주기로 하고 대학을 맡았다. 이후 경원대 등 4개 대학을 통합해 출범한 가천대는 대학가에서도 흔치 않은 혁신 사례로 꼽히며 변신을 거듭해 왔다. 이 총장은 2027년까지 국내 톱10 대학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왜 위기 대학을 거액을 들여 인수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20여 년 만에 완전히 다른 대학으로 탈바꿈시켰을까. 최하위권 대학을 20위권 대학으로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경원대 총장에 오른 이 총장은 재단 산하 4개 대학 통합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전문대)을 통합했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했다. 그리고 2012년 가천의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가천대가 탄생했다. 법인 산하 4개 대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2012년 통합 가천대 출범식에서 교기를 흔들고 있는 이길여 총장. 사진 가천대 이후 가천대는 공학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바꾸고 강의실과 교수를 확충하기 시작했다. 199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경원대는 111개 대학 중 9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그런데 2023년 평가에서 가천대는 27위를 기록했다. 물론 26년 사이 평가 대상 대학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순히 92위에서 27위로 올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평가 대상 대학 기준을 현재 기준으로 일치시키면, 1997년 43위에서 2023년 27위로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순위가 오른 건 여러 지표가 개선됐기 때문이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도 포기율이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 비율을 뜻하는데, 지난해 가천대는 이 비율이 16번째로 낮았다. 오히려 인 서울 상위권 대학 중에 중도 포기 학생이 가천대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 요즘처럼 대학을 다니다가도 재수를 하는 학생이 많은 시대에 중도 포기율이 낮다는 것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학교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 총장이 당시 경원대를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 대학의 발전 가능성이 엿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서울 인근의 대학이라는 입지를 유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인수한 뒤부터 이 총장의 고민은 커졌다. 어려서부터 똑같은 신체 조건인데 쟤는 1등을 하고 나는 못하란 법 있냐 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내가 운명처럼 하위권 대학을 맡았으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잠도 못 자고 어떻게 해야 꼴찌를 안 할까 고민했어요. 죽기 전까지 10등 안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20년 후 '학생 감소' 예상 "통합이 살길이다" 당시 이 총장이 고민한 10대 사학의 조건, 첫 번째는 규모 였다. 작은 대학은 살아남기 어려우니 학생 수가 많은 대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의대 다. 의대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은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통합이 급선무였다. 재단 산하 4개 대학을 합치면 의대를 보유한 충분히 큰 대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길여 총장은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직접 총장에 취임한다. 사진 가천대 통합은 규모가 큰 1개 대학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4개 대학 전체 규모는 줄여야 하는 작업이다. 통합 시에 유사 학과를 없애고 정원도 줄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당시만 해도 대학이 먼저 전체 정원을 줄여 통합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학생에게 등록금 수입이 나오는데, 그걸 줄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총장은 미래의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를 들었다.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그때만 해도 학령인구란 말도 생경했는데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학생 수만 많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 며 롱런하기 위해서는 통합하고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 고 말했다. 명분이 있는 결정이라 해도 국내 대학 역사에서 통합은 드문 일이다. 규모가 줄어드는 학과의 교수들부터 격렬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가천대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들은 학교 안에 텐트를 치고 이 총장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총장은 나는 학생들을 위해 온 거지, 교수들 위해 온 건 아니다 며 반대 교수들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내가 학교를 팔아 먹을까 봐 반대하는 교수가 많았어요. 그 사람들한테 말했죠. 나 40년 의사 해서 돈 많고, 자식 없어 돈 줄 사람도 없다고, 내 돈은 학교랑 병원에 다 줄 거라고요. 그다음엔 내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진심을 보여주는 것뿐이었죠. 이후 학교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수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당시 총장 반대 운동을 하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면서 총장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 총장은 그때 당신이 반대만 안 했어도 더 빨리 발전했을 거 아니냐고 농담하는 사이가 됐다 며 웃었다.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산 초음파 기계 통합 이후에도 가천대는 다른 대학에서는 하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잇따라 진행했다. 대표적인 게 공대 확대다. 이 대학 공학계열 입학 정원은 2014년 1307명에서 2024년 2060명으로 10년 새 700명 넘게 늘었다. 지난해 정부의 첨단학과 정원 확대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2025년에는 공학계열 정원이 2230명으로 더 증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공학계열 정원이 가장 큰 대학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많은 대학이 이공계를 확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총 정원이 고정돼 있어 한 계열을 늘리려면 다른 곳의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학내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천대는 AI, 스마트시티, 차세대반도체, 배터리 등 공학계열 학과를 계속 신설하고 정원을 늘려왔다. 2022년엔 창업에 강한 대학을 만들겠다며 '코코네스쿨'이란 창업 대학이 생겼다. 재학생이 창업하면 학점을 인정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파격적 제도도 도입했다. 가천 코코네스쿨 개소식. 사진 가천대 다른 대학과 달리 가천대는 왜 구조조정이 빠를까. 총장의 독단적 리더십 때문은 아닐까. 이에 대해 윤원중 부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 발전에 대한 계획은 총장에게 위임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높아서죠. 실제로 예전보다 대학이 계속 좋아지는 게 결과로 나오니까요. 독재와 독단이라면 구성원들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일해 보면 총장에겐 사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재산이 늘면 학교에 다 투자하는 걸 직접 보니까요. 사심 없는 투자의 대표적 케이스 중 하나가 인천 이길여 산부인과 시절, 다이아반지 대신 산 태아 초음파 기계다. 당시 이 총장은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4000만원짜리 초음파 기계를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4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초음파 기계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아 반지 사면 나만 좋지만, 초음파 기계를 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겠어요. 남들이 나한테 돈 많이 벌었다고 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난 여유만 있으면 환자나 학교에 썼는데. 눈앞의 이익보다는 훗날의 큰 그림 이 총장을 오래 지켜본 대학과 병원 관계자들은 그의 리더십에 대해 신기할 만큼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 고 말한다. 베팅한 사업마다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추진되자 곧바로 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I 붐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2020년 국내 최초 AI학과를 만들었고, AI인문대학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90대 나이에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꾸준한 학습이 비결이다. 2002년 가천대는 IT 사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국내 최초 소프트웨어대학을 설립했다. 사진 가천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 길병원이 한창 성장하던 90년대, 다른 병원들은 곳곳에 병원을 늘리고 있었다. 길병원 내에서도 서울에 병원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 총장은 병원만 늘린다고 될 게 아니라,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설립이 먼저 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병원 대신 1998년 가천의대가 설립됐다. 의대가 설립된 뒤 병원을 짓자는 얘기가 또 나왔지만, 이 총장은 이번엔 연구소가 필요하다 며 2004년 뇌과학연구소를 열었다. 당시 국내 유일의 7T(테슬라)급 MRI 장비를 설치했다. 이후에도 이 총장은 병원을 늘리기보다는 암당뇨연구원(2008년), 제2뇌과학연구원(2018년) 등의 연구시설을 먼저 지었다. 앞으로 의료의 화두는 뇌, 그리고 암과 당뇨가 될 것 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김우경 길병원장은 당시에 대해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결정 이라고 말한다. 당시 병원 교수들은 돈도 안 되는 기초과학을 왜 우리가 하느냐, 국가에서나 할 일이라며 다 반대했죠. 그런데 지금은 뇌과학연구원에 전 세계 유일의 11.74T급 MRI가 설치됐고,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동물 뇌 이미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요. 처음으로 뇌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건데, 2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굉장하죠. 저도 의사고, 원장이지만 그런 정도의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이길여 총장은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2009년 과학기술훈장 1급인 창조장을 받았다. 뇌과학연구소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를 설립해 국가의 기초 과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 가천대 매번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이 총장에게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물었더니 정글 속에 홀로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고 답했다. 피투성이가 돼 정글을 헤치고 결국 탈출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사흘 밤낮 고민해 답을 찾아내고 만다는 것이다. 매사 긍정적인 모습 뒤에는 이런 집요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고민하면 그냥 고민이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흘 밤낮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고민해 보면 길이 보이더군요. 시리즈 바로보기 No. 7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1356 등록일 2024.02.26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6편 '200분 대본 잠시 번외 편으로 길을 튼다. 이길여 총장의 주변인들을 만나던 중,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해서다. 주인공은 이 총장의 서울대 후배이자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는 배우 이순재. 그 역시 89세로 현역 배우 중 최고령인데, 직접 만나 보니 이 총장에게서 느껴지는 청춘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우는 끊임없는 도전 이라는 그의 말 속에선 이길여-이순재의 평행이론 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큼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1. 200분짜리 연극 소화하는 강철 체력 에너지 보충은 고기 이씨는 2021년에 이어 지난해 6월 연극 리어왕: King Lear 무대에 올랐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두 딸의 아첨에 넘어가 미치광이 노인으로 전락하는 주인공의 극적인 변화를 연기한 것. 원작을 각색하지 않은 대본으로 3시간20분이나 되는 실연 16회를 혼자 소화했다. 배우 이순재가 연극 '리어왕'에서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한 왕을 연기했다. 사진 연우무대 에이티알 무대에서만큼의 카리스마는 아니었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단단했다. 두 시간이 넘어가는 대화에서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2013년 예능 꽃보다할배 에서 쉬지 않고 걷는 직진순재 의 남다른 체력이 여전해 보였다. 비결을 물었으나 이 총장처럼 답은 싱거웠다. 식사를 거르지 않으며 특별히 챙겨 먹는 음식도 없단다. 22년 9월부터 네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 연극 이후 10㎏ 살이 빠져 고기를 자주 챙겨 먹고 있다는 게 꼽을 만한 특징이었다. 지난해 욕실에서 넘어져 사흘 입원하면서 겸사겸사 건강 체크를 했어요. 이 나이 먹도록 병원 신세를 한 번도 진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더라고요. #2. 늦게 배웠지만 가장 즐기는 취미는 골프 이 총장처럼 즐기는 운동 역시 골프였다. 72년 처음 배웠는데 중지 기간 이 있었던 것도 똑같았다. TBC 시절 골프연습장에서 누군가 탤런트 나부랭이가 골프를 다 친다, 세월 좋아졌구나 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당시만 해도 배우를 딴따라 로 낮춰 보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골프를 치면 배우가 돈 많이 번다는 오해가 생기겠구나 싶었죠. 당장 그만뒀어요. 2021년 골프 예능 프로그램 '그랜파(Grand Par)' 출연 모습. 박근형, 백일섭, 임하룡과 함께 했다. 사진 MBN 그러다 82년 쉰이 넘어 다시 클럽을 잡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즐기는 편이다. 지난해 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인터뷰 당일에도 아침 일찍 연기자 후배들과 18홀을 돌고 왔다는 수줍은 고백을 했다. 스코어는 예전만 못해 100대로 내려왔지만 타수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저 운동으로만 즐겨도 좋습니다. 언제 어떤 스케줄이 생길지 모르는 업의 특성상 헬스처럼 규칙적이지 않더라도 한 번 나가 많이 걸을 수 있다는 이유를 보탰다. 이씨의 또 다른 체력의 비결은 단연 금주다. 배우 오래 하려면 술부터 끊으라는 말을 후배들에게도 자주 한다고 했다. 20년 넘게 연극계에 있던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데, 그 계기가 처음부터 건강 관리는 아니었다. 젊을 때 술만 마시면 가게에서 싸움이 벌어지더라고요, 배우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긴 하는데 무시하는 말이 많았거든. 걸핏하면 시비가 붙으니 그때 결심했어요. 술은 절대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3. 업의 본질과 원칙으로 산다 이씨를 배우로 이끈 건 영화 햄릿 이었다. 서울대 철학과 2학년에 다니던 1955년, 서울 충무로 스칼라극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명대사를 듣는 순간 이건 예술이구나 소름이 쫙 끼쳤어요. 당시 배우이자 연출가인 로런스 올리비에가 햄릿으로 나왔는데, 이후 빠져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공동 작업을 할 정도로 작품을 재해석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는 점에서 롤모델로 삼았고, 서울대 연극부를 재건해 이끌고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더라도 누군가를 감동하게 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원칙만 생각했어요. 의사는 생명을 구해야 한다 는 사명감을 지켜 온 이 총장처럼 그도 업의 본질 에 인생을 걸었다.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가 조연 단역만 할 때도 우리는 연기를 하러 온 사람이니까 상관없었다고 했다. 78년 드라마에 출연하며 22년 만에 처음 출연료라는 걸 받으면서까지 배우의 삶을 버텼던 이유였다. 이씨는 '돈을 덜 벌더라도 누군가 감동시킬 수 있다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해 왔다. 김현동 기자 인생이라는 게 가끔 손해 보더라도 큰 손해는 아닙니다. 지금 나처럼 국민배우 소리 들으며 오래 배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손해 를 보더라도 민폐 는 끼치지 않겠다는 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NG를 내지 않겠다는 것에 민감하다. 그래서 촬영 석 달 전부터 대본을 외운다. 사극 같은 대작은 온종일 내가 대사 하기만 기다리는 단역들이 있어요. 그들도 나처럼 배우 아닙니까. 내가 누가 될 수는 없죠. 대사 자꾸 까먹으면 배우 관둬야 해요. #4. 67년 경력에도 작품 공부는 필수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서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중략) 부자들아 가난한 땅이 고통을 몸소 겪어봐라. 그리하여 그들에게 넘치는 것들을 나눠주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리어왕 출연을 이야기하던 그는 극 중 명대사를 숨도 쉬지 않고 읊었다. 작품을 공부하다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대사라 지금도 술술 나온다며, 그것이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했다. 최고 권력자가 나락으로 가서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백성의 삶을 이해하는 스토리 속에 현대에 주는 메시지가 있어요. 리더십의 핵심이 여민동락이라는 건데 이건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닌가, 배우가 작품을 한다는 건 이런 나름의 해석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촬영장에 갈 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품는다. 배우에게 작품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서다. 1969년 김기영 감독과의 미녀 홍낭자 촬영은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대감독과 의상을 두고 의견이 달랐지만 콘티를 예습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니 결국 그의 말을 들어줬다. 젊은 배우들이 깡패 양아치 연기는 잘하는데 이상의 지적 표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식인의 말과 상인의 말은 다르잖아요.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나 언어 표현이 돼야 하는데, 이건 본인이 평생 연구할 수밖에 없죠. 2014년 tvN 예능 '꽃보다할배' 한 장면. 그는 가이드 없는 여행에 대비해 비행기 안에서 스페인을 공부했다. 방송 캡처. 이씨가 고수하는 암기력 체크 방법도 일종의 공부 다. 2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 역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대통령 이름을 초대부터 외워 나간다. 익히 아는 인물 외 1년짜리 단기 대통령까지 빼놓지 않는데,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에서 이들의 판단과 결정을 연대기로 기억하며 자신을 점검한다. #5 영원히 도전하는 게 건강 비결 이씨에게 연극 리어왕 은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60년 배우생활에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맥베스 만 연기해 봤던 그가 방송에서 리어왕을 해보고 싶다 라고 한 걸 본 제작사가 공연을 제안해 왔다. 그는 출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축약이나 각색 없는 대본, 고전을 완벽히 재현한 의상과 무대장치, 무엇보다 더블 캐스팅 없이 혼자 책임지겠다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2021년 토월극장에서의 초연이 전 회차 매진되면서, 그는 제대로만 하면 관객은 얼마든지 있다 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씨는 지난해 오랜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현했다. 안톤 체홉 작품 연출 이라는 꿈을 연기인생 66년 만에 이뤘다. 사진 아크컴퍼니 VAST엔터테인먼트 이씨는 배우로 살며 평생이 도전의 연속 이었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지난해 8월 촬영한 코미디 드라마 개소리 의 역할 역시 67년간 거쳐 온 배역과는 또 달랐다. 국민배우에서 갑질 배우로 추락하며 지방에 내려온 이씨가 개소리를 알아듣게 되면서 사건 해결사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내가 몰랐던 한 인물을 만나고 또 만들어가는 건 늘 어렵죠, 내 본래 기질과 다를 땐 더 그렇고요. 하지만 이게 또 내게 주어진 과제니까, 오늘 하루를 보내는 동력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건강하게 배우 할 수 있는 비결은 이게 아닐까 해요. 시리즈 바로보기 No. 6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1668 등록일 2024.02.19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5편 - 90 넘은 이길여 “너 2022년 말에 총장님의 자서전 『길을 묻다』가 나온 직후 오랜만에 만났어요. 책도 그렇고 옛날이야기나 가볍게 할 줄 알았는데 웬걸요. 1시간 만나서 40분 넘게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 라는 말이 오갔죠. 보통 그 연세면 추억을 곱씹거나 건강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총장님 입에서는 AI, 챗 GPT가 가장 많이 언급됐어요.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이 총장을 두고 젊다 고까지 표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력 주름 걸음걸이 성량 같은 외연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일수록 새로움과 내일에 대한 호기심 이 진짜 건강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이길여 총장은 뉴스를 통해 새로운 화두를 포착하고 관련자들과 논의의 자리를 마련한다. 사진 가천대실제 장수와 학습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는 이미 많은데, 그중에는 오래 사는 사람의 60%가 새로운 학습에 도전했다 는 결과도 있다. 배우는 과정에서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새로 얻은 지식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 안정감을 찾음으로써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고 말하는 이 총장만의 자기 주도 학습은 어떤 것일까. 일상을 들여다봤다.# 이 총장의 집은 작은 뉴스룸이나 다름없다. 거실의 큼지막한 테이블 위에는 늘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퀴가 달린 이동 테이블 위에도 언제든 손 뻗으면 잡힐 수 있도록 신문을 둔다. 매일 아침, 중앙일간지부터 지방지까지 헤드라인이라도 빠르게 훑는 게 중요한 일상이다. 주요 일간지의 경우 사설을 읽는 걸 빼놓지 않는다.집에 있는 동안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역시 뉴스다. 지상파 외에 종합편성 채널이 늘어나면서 뉴스 하나가 끝나면 채널을 돌려 다른 뉴스를 보는 시청 패턴이 굳어졌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 이 총장이 뉴스 마니아 를 자처하는 건 다양한 분야의 이슈에서 메가 트렌드 를 파악하고 업무에 적용하려는 목적이다.이 총장은 매일 아침 챙기는 신문들. 바쁘더라도 주요 헤드라인과 사설 읽기는 빠뜨리지 않는다. 사진 가천대실제 아침 신문에 전기차 시대에 대학은 내연기관을 가르친다 는 기사가 나온 날, 이 총장은 곧장 관련 학과 회의를 소집해 우리는 뭘 가르치는지, 잘하고 있는지 진단해 보라고 지시했다. 좀 더 깊이 있는 주제일 땐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하는 식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 통합 역시 학령인구 라는 말이 생경했던 20여 년 전부터 학생 수가 줄어들면 대학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앞서 고민한 결과였다.# 이 총장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인맥은 누구일까. 다양한 네트워크가 있지만 가장 큰 카테고리는 역시 기자와 교수다. 세상 흐름을 가장 빠르게 알고, 전문적 지식을 지닌 이들 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자를 통해 관심 분야의 전문가를 발굴하고 학교와 병원에 등용한 사례도 적지 않은데 김충식 특임부총장, 오대영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등이 모두 기자 출신이다. 예전 병원을 확장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나 뭔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친분 있는 기자를 찾았어요. 업계지나 전문지 편집국장 같은 분한테 전화해 아침 좀 같이 먹자, 그러고는 서울을 2~3시간 걸려 가서 만났죠. 지금도 주변 직책자들에게 뉴스 많이 보고 언론과 가까이 지내라라는 조언을 많이 합니다. # 이 총장을 주말마다 찾는 건 조카 부부인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과 최미리 가천대 수석부총장이다. 두 사람은 병원과 학교라는 가천길재단의 두 가지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자연스럽게 가족이면서도 공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고, 이 총장의 머릿속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위치다.세 사람은 주로 토요일 오후, 이 총장의 인천 자택이나 강원도 평창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모인다.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을 마치고 차 한잔을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이 총장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온다. 우리 콘퍼런스합시다. 이른바 위켄드 콘퍼런스는 두 사람이 보직을 맡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일종의 리뷰 프리뷰 자리다. 병원과 학교에 대해 지난 한 주간 중요했던 일, 돌아올 한 주에 닥칠 일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데 여기에 미래를 향한 식견이 더해진다. 이 총장은 식사 전 미리 백지에 그 리스트를 적어 둔다.이길여 총장은 최미리 가천대 수석 부총장(왼쪽)과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오른쪽)과 다양한 주제로 '주말 콘퍼런스'를 연다. 사진 가천대 우리 의견을 듣고 당신 생각을 이야기하며 짚어가는 자리죠. 어릴 적 추운 날 대청마루에서 제사를 지내본 사람은 그런 기억이 있잖아요. 한 장 한 장 지방 태우는 거 보면서 저게 다 언제 없어지나,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요. 콘퍼런스할 때 제가 그런 마음이에요. 총장님 리스트가 오늘은 얼마나 되나, 슬쩍 체크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게 있어서 새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요. 지시를 내리기 전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알려주시는 자리라 우리가 많이 배워요. (이태훈 원장)이 총장이 주마다 특별한 인생 수업 을 마련하는 셈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내가 키운 자식이 아니니 해 줄 말이 많아요. 그동안 어떻게 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제가 만날 그래요. 너희들은 125세까지 살 텐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 거냐고요. # 이런 콘퍼런스 가 얼마 전까지 집 밖에서도 있었다. 고 이어령 교수, 김병종(가천대 석좌교수) 화백과의 만남이다. 셋의 회동이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팬데믹 전까지 종종 이뤄졌다. 이 교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대표 지식인으로, 김 화백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가로 이 총장과 오래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다.이 교수의 경우 1991년 가천문화재단 설립 시 조언해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가천대 교가를 작사하고 학교 대표 교양강좌인 지성학 강의 의 첫 강연자로 참여하면서 이 총장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이 총장 역시 2009년 이 교수가 추진하던 나눔공동체 사업 세 살 마을 에 힘을 보태며 뜻을 함께했다. 서로 우군이 되어준 셈. 90년대 초반부터 서로의 우군이 됐던 고 이어령 장관과 이길여 총장. 부정기적으로 만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0년 세살마을 발대식 당시 모습. 사진 가천대김 화백과 이 총장의 연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길여 산부인과가 있던 동인천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당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 이길여처럼 돼라 였다. 병원 창밖에서 늘 바삐 움직이는 의사선생님 을 구경만 하던 소년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서울대 동창회에서 이 총장을 재회할 수 있었다.이길여 산부인과가 있던 동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병종 화백은 이 총장과 대학 선후배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가천대# 언뜻 보면 공통점이 없는 세 사람이지만 김 화백은 정작 만나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고 기억했다. 공통점은 바로 생명 이었다.이 교수는 생전 생명 자본주의 를 주창해 왔다.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자연이 경제 활동의 자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꾸준히 펴 왔다. 김 화백 역시 생명 작가 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연작을 선보였다. 생명의 귀함, 생명으로부터 받는 위로 등을 표현해 당대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 교수가 김 화백을 두고 생명의 동행자 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총장님도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는 데는 저희 두 사람과 다를 바 없죠. 소중한 생명을 받아내는 의사이자 그 생명이 온전히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자라는 점에서요. 셋이 만나면 서로 생명 철학과 비전을 많이 공유했습니다. 이 교수가 2019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세 사람의 대화는 더 무르익었다. 생명의 탄생만이 아니라 소멸까지 폭넓게 다뤄졌다.김 화백은 두 사람의 대화가 매우 특별했다고 기억했다. 호기심 많은 두 어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화두만으로 두세 시간을 채워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90%는 달변가인 이 교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총장님도 경청하시다 단문으로 짧게 의견을 내시고 아이디어를 탁탁 주시곤 했죠. 두 분 모두 서로 존경하는 사이였고, 보기에 참 아름다웠어요. 문학 사학 철학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지식향연, 그 자체였답니다. 시리즈 바로보기 No. 5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2400 등록일 2024.02.05 공지기간 ~ 0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4편 - 92세 이길여, 공 뻥 지난해 7월 병원 보직자들과 라운드하는데 거리를 재러 홀 가까이 와 보지도 않고 라이도 잘 안 보고 퍼트를 갖다 대시더라고요. (김우경 가천대 길병원장) 같이 쳐 보면 알겠지만 느릿느릿 걷다 툭 치고 가는 어르신들 골프가 아니에요. 공이 뻥뻥 날아갑니다. (최미리 가천대 수석부총장) 이 총장은 상체 꼬임을 최대한 살리는 '꽈배기 권법'으로 드라이버 장타를 유지한다. 사진 가천대 이길여 총장을 오래 알아온 사람마다 한 번씩 입에 올리는 화제가 있다. 바로 골프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필드에 나가 클럽을 잡을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몇몇은 이 총장이 샷을 날리는 휴대폰 영상을 마치 증거물 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목격담이 아니라도 이 총장의 골프 실력은 이미 공증 돼 있다. 78세(2010)에 이어 84세(2016)에도 에이지 슈트(18홀 경기에서 자신이 나이와 같거나 그 이하로 스코어를 내는 것)를 한 것. 골퍼로서는 홀인원이나 이글, 알바트로스보다 더 자랑할 만한 기록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실력과 체력이 모두 받쳐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준급 아마추어 골퍼도 60대 타수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상 70대에서나 도전해 볼 법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초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한글날) 연휴 사흘 내내 18홀 라운드에 나섰다 며 앞으로 에이지슈트할 확률이 더 높다 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50대부터는 평생 할 운동으로 골프를 배우라 는 조언도 보탰다. # 골프를 즐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클럽을 처음 잡은 건 1970년. 당시 병원 병리과장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막상 실전에 나서기엔 한창 바쁠 때라 틈을 내지 못했다. 87년 중앙길병원을 짓고 나서야 숨 돌릴 여유가 생겼지만, 이때는 또 사회 분위기를 탔다. 노태우 정부 시절 유독 수해가 많아 사회 지도층이 골프를 자제하는 분위기였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아예 공무원 골프 금지령 이 내려진 것. 결국 90년대 후반 60대 중반이 돼서야 이 총장도 본격적으로 잔디를 밟을 수 있었다. 늦깎이 골퍼였지만 실력은 크게 뒤지지 않았다. 86~87년 사이에 다진 기본기가 빛을 발했다. 당시 인천에는 오전 4시에도 문을 여는 승마장이 있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그곳에서 한 시간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골프 연습도 한 시간씩 했죠.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자동으로 공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나씩 놔 줬거든요. 그중에 캐디 경력자가 많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코치를 받을 수 있었죠. 해외 유명 선수의 스윙 슬로모션을 보며 이를 따라하기도 했다. 사진 가천대 지금처럼 유튜브나 동영상이 없던 시절이라 아널드 파머나 잭 니클라우스 같은 유명 골프의 스윙 사진을 보면서 자습을 했다. 잡지에 연속 카메라로 찍은 슬로 모션 사진이 나오면 따라 해 보면서 스윙의 정석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이다. 잠이 적은 이 총장에게 새벽은 운동하기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됐다. 여자 의사들과 잡았던 골프 티업 시간이 오전 4시. 예전엔 그 시간이면 예약 없이 현장에 와서도 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깜깜해서 공이 안 보이는 거죠. 그럼 티박스 주변에 둘러앉아 수다 좀 떨다가 공이 보인다 싶으면 그때부터 치기 시작하는 거죠. 한 세 홀쯤 지나야 해가 뜨면서 공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되고 그랬어요. # 이 총장이 꼽는 골프의 매력은 단연 손맛 이다. 특히 드라이버가 정타를 맞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다. 실제 그와 라운드해 본 사람들은 모두 이 총장의 티샷을 인정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자타공인 드라이싱 (드라이버로만 보면 싱글감). 이 총장이 인터뷰 중 자랑 삼아 소개한 장타 일화 도 있다. 15년 전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과의 라운드인데, 그와는 90년대 후반까지도 1년에 두 번씩, 안양에 벚꽃 필 때, 원주에 단풍 들 때 라운드를 가질 정도로 필드 인연이 깊은 사이다. 안양CC가 원래 남녀 티가 크게 거리 차이가 안 나는데, 세컨드샷을 치러 가 보니 내 공이 더 앞에 나가 있더라고요. 그때까지 윤 회장이 이리저리 코치를 많이 해줬는데 반전이 돼버렸죠. 나중에 캐디한테 물어보니 210야드(192m)쯤 된다고 귀띔해 주더라고요. 아담한 체격에다 나이가 들어서도 장타가 가능한 비법은 뭘까. 최미리 수석부총장이 여기에 답을 내줬다. 일명 꽈배기 권법 이다. 몸을 최대한으로 꼬았다가 다시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힘을 이용하는 거죠. 유연성과 근력이 모두 있어야 하는 스윙이라면서, 대화 중간에 휴대폰을 꺼내 이 총장의 드라이버샷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직접 촬영한 모습이었다. 60대인 저와 남편, 총장님이 같은 티에서 치는데 열 번 중 세 번은 저랑 비슷하거나 저보다 더 많이 나가요. 그걸 보면서 저희끼리 그러죠. 우리가 저 나이 때 저렇게 칠 수 있을까 라고요. 필드 나갈 때마다 이런 화제로 늘 이야기를 나눠요. #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 총장의 골프 스타일은 그가 일하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송진구 한국리더십대학 원장 겸 가천대 교수(자유전공)는 과감하게 거침없이 치는 스타일이 평소 의사 결정하는 방식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 고 말한다. 공을 앞에 두고서 할까 말까 재거나 주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윤은기 회장도 여기에 공감했다. 드라이버를 날리고 나서는 기쁘거나 아쉽거나 하는 감정 표현 대신 세컨드샷으로 직진한다는 것. 티샷 이후부터는 스코어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는 평소 그의 신조 그 자체다. 예를 들면 거리가 애매할 땐 연못을 넘겨 치느냐, 돌아서 가느냐 망설여지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대부분 그러면 공을 살리고 싶고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택하죠. 그런데 총장님은 안 그래요. 이거 뭐 안 넘어가면 어때, 한번 때려보는 거지 이런 식이죠. 원래 스포츠가 수비보다는 공격을 보는 게 더 재미있는 법이라 총장님이 샷 자체를 시원시원하게 때리면 동반인들도 흥미진진한 관전이 됩니다. 미스샷이 나도 절대 멀리건을 받지 않는다거나, 파3에서 앞 팀이 홀아웃하기 전에는 티를 미리 꽂아두지 않는 것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도 이길여다운 운동법이다. 라운드 전 스트레칭하는 모습. 사진 가천대 골프를 즐기며 운동만 하는 건 아니다. 일명 필드 세미나 다. 잔디를 걸으며 정보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기회로 삼는다. 친분이 딱히 없어도 현 이슈와 관련된 전문가나 교수, 기자 등이 이 총장과의 라운드에 자주 초대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 대화가 필드에서만 끝나지 않을 경우 뒤풀이에서 19홀 세미나 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 이 총장은 자서전 『길을 묻다』에서 78세에 78타를 치면서 인생의 전환점에 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회고했다. 파워와 열정만 있다면 80대 나이엔 80타를, 90대 나이엔 90타를 치면서 에이지 슈터 의 영광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본 것. 일밖에 모르고 살던 40여 년의 인생이 헛헛해질 때쯤, 새로운 출발점에 왔다는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에이지 슈트 할 기회는 누구보다 많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요. 나이 먹으니 좋은 점이 또 생기네요. 시리즈 바로보기 No. 4 작성자 홍보실 조회수 1698 등록일 2024.01.29 공지기간 ~ 0 처음 12 1 2 다음 페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