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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7편 92위 대학 200억에 산 이길여 “톱10 만들겠다”
- 수정일
- 2024.02.27
- 작성자
- 홍보실
- 조회수
- 3202
- 등록일
- 2024.02.26
‘이길여’라는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언제부터일까.
전국 단위 일간지 기준으로 보면 1998년부터 그의 이름이 나오는 기사 수가 갑자기 많아진다. 이전까지는 길병원 행사를 소개하는 단신 기사에 이름이 한두 번 나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1998년 가천의대를 설립하고, 경원대까지 인수하면서 언론은 이길여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는 이 총장에 대해 “교육계 진출 4년 만에 거물”이 됐다고 표현했다.
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 지면
의사였던 그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나이는 66세. 당시 경원대는 이사장의 200억원대 등록금 횡령 등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 총장은 이 돈을 대신 보전해 주기로 하고 대학을 맡았다.
이후 경원대 등 4개 대학을 통합해 출범한 가천대는 대학가에서도 흔치 않은 혁신 사례로 꼽히며 변신을 거듭해 왔다. 이 총장은 2027년까지 국내 톱10 대학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왜 위기 대학을 거액을 들여 인수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20여 년 만에 완전히 다른 대학으로 탈바꿈시켰을까.
최하위권 대학을 20위권 대학으로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경원대 총장에 오른 이 총장은 재단 산하 4개 대학 통합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전문대)을 통합했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했다. 그리고 2012년 가천의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가천대가 탄생했다.
법인 산하 4개 대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2012년 통합 가천대 출범식에서 교기를 흔들고 있는 이길여 총장. 사진 가천대
이후 가천대는 공학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바꾸고 강의실과 교수를 확충하기 시작했다. 199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경원대는 111개 대학 중 9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그런데 2023년 평가에서 가천대는 27위를 기록했다.
물론 26년 사이 평가 대상 대학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순히 92위에서 27위로 올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평가 대상 대학 기준을 현재 기준으로 일치시키면, 1997년 43위에서 2023년 27위로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순위가 오른 건 여러 지표가 개선됐기 때문이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도 포기율이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 비율을 뜻하는데, 지난해 가천대는 이 비율이 16번째로 낮았다. 오히려 ‘인 서울’ 상위권 대학 중에 중도 포기 학생이 가천대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 요즘처럼 대학을 다니다가도 재수를 하는 학생이 많은 시대에 중도 포기율이 낮다는 것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학교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 총장이 당시 경원대를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 대학의 발전 가능성이 엿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서울 인근의 대학이라는 입지를 유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인수한 뒤부터 이 총장의 고민은 커졌다.
“어려서부터 ‘똑같은 신체 조건인데 쟤는 1등을 하고 나는 못하란 법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내가 운명처럼 하위권 대학을 맡았으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잠도 못 자고 어떻게 해야 꼴찌를 안 할까 고민했어요. 죽기 전까지 10등 안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20년 후 '학생 감소' 예상…"통합이 살길이다"
당시 이 총장이 고민한 10대 사학의 조건, 첫 번째는 ‘규모’였다. 작은 대학은 살아남기 어려우니 학생 수가 많은 대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의대’다. 의대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은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통합이 급선무였다. 재단 산하 4개 대학을 합치면 의대를 보유한 충분히 큰 대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길여 총장은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직접 총장에 취임한다. 사진 가천대
통합은 규모가 큰 1개 대학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4개 대학 전체 규모는 줄여야 하는 작업이다. 통합 시에 유사 학과를 없애고 정원도 줄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당시만 해도 대학이 먼저 전체 정원을 줄여 통합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학생에게 등록금 수입이 나오는데, 그걸 줄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총장은 미래의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를 들었다.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그때만 해도 학령인구란 말도 생경했는데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학생 수만 많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며 “롱런하기 위해서는 통합하고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명분이 있는 결정이라 해도 국내 대학 역사에서 통합은 드문 일이다. 규모가 줄어드는 학과의 교수들부터 격렬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가천대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들은 학교 안에 텐트를 치고 이 총장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총장은 “나는 학생들을 위해 온 거지, 교수들 위해 온 건 아니다”며 반대 교수들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내가 학교를 팔아 먹을까 봐 반대하는 교수가 많았어요. 그 사람들한테 말했죠. 나 40년 의사 해서 돈 많고, 자식 없어 돈 줄 사람도 없다고, 내 돈은 학교랑 병원에 다 줄 거라고요. 그다음엔 내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진심을 보여주는 것뿐이었죠.”
이후 학교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수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당시 총장 반대 운동을 하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면서 총장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 총장은 “그때 당신이 반대만 안 했어도 더 빨리 발전했을 거 아니냐고 농담하는 사이가 됐다”며 웃었다.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산 초음파 기계
통합 이후에도 가천대는 다른 대학에서는 하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잇따라 진행했다. 대표적인 게 공대 확대다. 이 대학 공학계열 입학 정원은 2014년 1307명에서 2024년 2060명으로 10년 새 700명 넘게 늘었다. 지난해 정부의 첨단학과 정원 확대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2025년에는 공학계열 정원이 2230명으로 더 증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공학계열 정원이 가장 큰 대학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많은 대학이 이공계를 확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총 정원이 고정돼 있어 한 계열을 늘리려면 다른 곳의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학내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천대는 AI, 스마트시티, 차세대반도체, 배터리 등 공학계열 학과를 계속 신설하고 정원을 늘려왔다. 2022년엔 창업에 강한 대학을 만들겠다며 '코코네스쿨'이란 창업 대학이 생겼다. 재학생이 창업하면 학점을 인정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파격적 제도도 도입했다.
가천 코코네스쿨 개소식. 사진 가천대
다른 대학과 달리 가천대는 왜 구조조정이 빠를까. 총장의 독단적 리더십 때문은 아닐까. 이에 대해 윤원중 부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 발전에 대한 계획은 총장에게 위임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높아서죠. 실제로 예전보다 대학이 계속 좋아지는 게 결과로 나오니까요. 독재와 독단이라면 구성원들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일해 보면 총장에겐 사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재산이 늘면 학교에 다 투자하는 걸 직접 보니까요.”
사심 없는 투자의 대표적 케이스 중 하나가 인천 이길여 산부인과 시절, 다이아반지 대신 산 태아 초음파 기계다. 당시 이 총장은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4000만원짜리 초음파 기계를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4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초음파 기계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아 반지 사면 나만 좋지만, 초음파 기계를 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겠어요. 남들이 나한테 돈 많이 벌었다고 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난 여유만 있으면 환자나 학교에 썼는데.”
눈앞의 이익보다는 훗날의 큰 그림
이 총장을 오래 지켜본 대학과 병원 관계자들은 그의 리더십에 대해 “신기할 만큼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한다. 베팅한 사업마다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추진되자 곧바로 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I 붐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2020년 국내 최초 AI학과를 만들었고, AI인문대학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90대 나이에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꾸준한 학습이 비결이다.
2002년 가천대는 IT 사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국내 최초 소프트웨어대학을 설립했다. 사진 가천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 길병원이 한창 성장하던 90년대, 다른 병원들은 곳곳에 병원을 늘리고 있었다. 길병원 내에서도 서울에 병원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 총장은 “병원만 늘린다고 될 게 아니라,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설립이 먼저”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병원 대신 1998년 가천의대가 설립됐다.
의대가 설립된 뒤 병원을 짓자는 얘기가 또 나왔지만, 이 총장은 이번엔 “연구소가 필요하다”며 2004년 뇌과학연구소를 열었다. 당시 국내 유일의 7T(테슬라)급 MRI 장비를 설치했다. 이후에도 이 총장은 병원을 늘리기보다는 암당뇨연구원(2008년), 제2뇌과학연구원(2018년) 등의 연구시설을 먼저 지었다. “앞으로 의료의 화두는 뇌, 그리고 암과 당뇨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김우경 길병원장은 당시에 대해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당시 병원 교수들은 돈도 안 되는 기초과학을 왜 우리가 하느냐, 국가에서나 할 일이라며 다 반대했죠. 그런데 지금은 뇌과학연구원에 전 세계 유일의 11.74T급 MRI가 설치됐고,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동물 뇌 이미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요. 처음으로 뇌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건데, 2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굉장하죠. 저도 의사고, 원장이지만 그런 정도의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이길여 총장은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2009년 과학기술훈장 1급인 창조장을 받았다. 뇌과학연구소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를 설립해 국가의 기초 과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 가천대
매번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이 총장에게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물었더니 “정글 속에 홀로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고 답했다. 피투성이가 돼 정글을 헤치고 결국 탈출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사흘 밤낮 고민해 답을 찾아내고 만다는 것이다. 매사 긍정적인 모습 뒤에는 이런 집요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고민하면 그냥 고민이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흘 밤낮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고민해 보면 길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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