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세요"
이길여 총장과 오래 인연을 맺어 온 이들에게 그의 건강을 물으면 한결같은 답이 돌아왔다. 이 총장보다 30~50세나 젊은 이들이지만 ‘나도 따라가기 힘든 체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는 물론 비행기 안에서도 눈을 붙이는 걸 본 적이 없다’ ‘사람이 피곤해서 몸살이 날 수 있다는 걸 이해 못 한다’는 믿지 못할 ‘증언’이 쏟아졌는데, 실제 그는 국민 10명 중 8명이 감염된 코로나도 무사히 피해 갔다.
이 총장의 체력이 특히 빛을 발하는 건 시간 제약이 있는 해외 출장이다. 그중에서도 2010년 하와이 출장이 백미. 일행이었던 가천대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예상치 않게 대학 해외연수 캠퍼스(현 하와이 가천글로벌센터) 매물을 찾느라 꼬박 2주를 보냈어요. 자유 시간도 없이 종일 건물만 보러 다녀도 마땅치 않았죠. 그러다 떠나기 전날 저녁에 갑자기 하나 더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아이고, 저희가 총장님에게 제발 좀 살려 달라고 빌었죠. 그랬더니 당신이 그 밤에 혼자 다녀와 건물을 계약하시더라고요.”
코로나 전까지 수차례 일본 출장길에 나선 비서진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첫 비행기로 도착해 호텔에 짐을 맡겨 두고 온종일 다니다 오후 9시쯤 방에 들어가요.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강행군이죠. 가끔은 지하철을 타고 일정을 소화하기도 하세요.” (김경민 비서)
이 총장 자신도 체력은 어릴 적부터 남 못지않았다고 인정한다. 특히 통학을 위해 많이 걸은 게 힘을 키운 원천이 됐다고 한다. 그가 다녔던 군산 대야초등학교는 집에서 4㎞, 이리여자중·고등학교도 2㎞쯤 떨어진 역까지 걸어가 다시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해야 했는데, 가끔 기차가 운행되지 않을 땐 20㎞를 걸어오기도 했다.
이쯤이면 이 총장의 신체 나이는 얼마나 될까.그가 건강검진과 진료를 받는 길병원의 김우경 원장은 ‘60대 중반’이라고 가늠했다. 그러면서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병원에서도 특별 관리까지 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보탰다. 소화기내과 김주현 교수가 주치의를 맡고, 1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 정도. 이때 병원 의료진 사이에서 이 총장의 건강 성적표가 화제가 되곤 하는데, ‘골밀도가 50대 못지않다’는 이야기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됐다.
최근엔 장수인자로 알려진 HDL(고밀도지단백질) 콜레스테롤 수치도 이슈에 올랐다. 이 총장 자신도 “환갑 넘은 대학 후배가 직접 검사를 해줬는데 자기보다 더 높은 83이라고 하더라”며 은근 뿌듯한 내색을 비췄다. HDL 20~24세 여성의 수치는 69mg/dL이다가 70세에 59mg/dL까지 내려간다. (한국인 HDL·LDL 콜레스테롤 참조 표준)
제아무리 타고난 체질이라지만 특별한 관리법이 있을 법하다. 일단 식습관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공들인 아침 식사다. 158㎝에 59㎏의 아담한 체격과 달리 그는 자타공인 ‘대식가’다. 아침 역시 녹즙 한 컵을 시작으로 계란 요리, 요구르트, 콩물이나 단백질 파우더를 넣은 우유, 견과류, 고구마나 감자가 식탁 위에 올라온다. 여기에 올리브유에 구운 삶은 토마토, 파프리카나 생양배추 등 소스를 뿌리지 않은 채소도 즐겨 먹는다. 후식은 꼭 사과로 챙기는데, 평소 단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식탁에 머무는 시간은 30분~1시간. 평균 이상으로 여유를 부리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젊은 시절 한 15년쯤 식습관이 참 ‘문란’했어요. 환자가 아침부터 점심시간 지나서까지 몰려오니 오후 3시쯤이나 돼야 첫 끼니를 먹었죠. 아침-점심-저녁을 그때 다 채우는 셈이라 폭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몸에 얼마나 안 좋은 걸 아니까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천천히 먹으라는 말을 자주 해요.”
대신 점심 약속이 없을 땐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전복죽·야채죽·닭죽 등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외식을 한다면 늘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단백질 섭취에 도움이 되고 전반적으로 맵고 짠 한식을 피하기 위해서다. 여전히 고기 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건 임플란트 한 번 한 적 없는 건강한 치아 덕인데, 젊을 때부터 치실을 사용하고 식사 후에 바로 양치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최근 가장 좋아하는 ‘특식’은 햄버거. 미국 유학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일종의 소울 푸드이기도 하다.
“국물 없으면 안 된다는 어르신 입맛이 아니에요. 게다가 설마 다 드실까 싶어서 (버거킹 와퍼) 주니어 사이즈로 사 갔다가 혼이 난 적 있어요. 레귤러 사이즈에 프렌치프라이, 다이어트 콜라까지 세트로 주문해야 해요.” (김경민 비서)
자신이 의사이니만큼 각종 건강 보조제도 한 움큼씩 챙기지 않을까 싶지만 예상과 달랐다. “이 나이에 영양제는 될 수 있으면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약이 흡수되는 간과 신장도 늙어가는 터라 과유불급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나마 주변 성화에 빠뜨리지 않고 먹는 건 비타민·콜라젠·유산균·바이오틴이다.
예상을 깨는 또 한 가지는 술이다. ‘바른 생활’ 이미지 탓에 한 모금도 못 마실 것 같지만 의외로 주량이 꽤 있다고 한다. “어릴 적 직접 술을 담가 동네잔치를 하던 집에서 자란 덕이죠. 굳이 술자리를 빼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지난해 병원 행사 뒤풀이에서는 분위기를 돋우려 폭탄주 한 잔을 너끈히 들이켰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는 평소 와인 한 잔 정도만 즐기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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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이 먹거리보다 신경 쓰는 건 오히려 일상의 루틴이다. ‘천성이 모범생’이라는 그의 말처럼 미루거나 예외를 두는 법이 없다. 오후 11~12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7~8시에 일어나며 하루 8시간 수면을 유지한다. 60대까지 4시간씩만 자면서 하루를 버티던 그도 10여 년 전부터는 주변의 권유로 시간을 늘렸다.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 일과는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기와 스트레칭. 코로나 전에는 5년간 주 5일 요가 수업을 받았다. 그 덕에 지금도 몸을 숙여 무릎을 굽히지 않고 손끝이 발에 닿는 유연성을 유지한다.
요가가 몸풀기라면 본격적인 운동은 따로 있다.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나온 대로 걷기는 이 총장이 가장 즐기는 운동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는 예찬론자답게 집 안에 각종 기구를 들여 운동방을 마련한 데 이어, 최근엔 집 안에 작은 수온 풀을 만들어 한 시간 안팎 수중 워킹을 즐긴다.
한창 바쁠 땐 점심 후에 산책 시간을 일부러 빼놓으며 걷기 시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다음 일정이 있는 병원이나 학교로 가기 전 인천대공원, 남한산성 등을 찾아 한 시간씩 걸었다. “출근 때부터 아예 골프용 보스턴백에 산책용 옷과 운동화를 챙겨 나왔다”는 게 황종인 수행비서의 이야기다.
걷기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습관이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선 “1분 1초를 가만히 안 계신다”는 말이 나온다. 차 안에서도 손목, 발목을 돌리거나 밴드를 이용해 허벅지를 넓혔다 좁히는 운동을 하다 보면 쉴 틈이 없다. 집에서 누워 텔레비전을 볼 때도 소파에 기대기보다 누워서 다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식이다.
모두가 감탄하는 꼿꼿한 자세 역시 부단한 관리의 산물이다. “총장님과 같이 운동하면 다리를 끌지 말고 똑바로 걸어라, 앞을 응시하면서 힘줘 걸어라, 이런 지적을 하세요. 당신 걷는 모습도 어떤지 봐 달라고 하시며 자신을 모니터링하기도 하고요. 이럴 때 ‘뒷모습은 40대예요’하면 좋아하시죠.” 이태훈 가천대 길병원 의료원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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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와 운동, 습관 등을 종합해 봐도 이 총장의 건강 비법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상식 수준일 뿐이다. 결국 ‘꾸준함이 비결’이라는 모범 답안이 전부일까.
기대가 사그라지는 표정을 읽었는지, 이 총장은 곱씹을 만한 한마디를 남겼다.
"건강하니까 열정이 넘치는 게 아니라, 열정이 있으니까 건강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아직도 학생이나 환자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도전적으로 일을 벌이고, 좋은 결과가 나올 때 한없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 자식처럼 아끼는 수만 명의 학생으로부터 사랑받고 있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뿌듯함이 건강의 비결인 셈이었다.
“저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죠. 내 건강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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